1946년 8월 22일, 교수 80명과 학생 1,500명. 변변한 교재도, 넉넉한 강의실도 없었습니다. 개교 4년째 되던 해, 캠퍼스에 폭탄이 떨어졌습니다. 도서관이 불탔고, 학생들은 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두 달 뒤, 누군가 천막을 치고 칠판을 세웠습니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1946년 8월 22일. 그날의 기록

광복 다음 해, 서울 도심 곳곳에는 아직 일제강점기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건물 중 하나에 간판 하나가 걸렸습니다.
‘국립서울대학교’
교수 80명. 학생 1,500명. 제대로 된 교재도, 실험 기자재도, 넉넉한 강의실도 없었습니다. 국가 예산은 바닥이었고, 도서관 장서는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그해 9월, 첫 학기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개교 4년째 되던 해
전쟁이 터졌습니다.
서울대 캠퍼스 건물들이 폭격을 맞았습니다. 도서관에 불이 붙었습니다. 강의실 벽에 포탄 구멍이 뚫렸습니다. 학생들은 총을 들었고, 교수들은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부산 어딘가에 천막이 쳐졌습니다. 그 안에서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칠판도 변변찮았고, 의자도 없었고, 총성이 멀리서 들렸습니다. 출석을 부르는 교수의 목소리. 노트에 받아쓰는 학생들의 펜 소리.
그 학기의 이름은 ‘1950년 2학기’였습니다.
천막 교실의 시간표
그 시절 서울대 피난 캠퍼스의 하루를 기록한 문서가 남아 있습니다.
오전 8시, 강의 시작. 오후 5시, 강의 종료. 수업 과목은 법학, 철학, 수학, 물리학, 문학. 교재는 교수가 직접 등사기로 밀어 나눠줬습니다. 전선이 바뀔 때마다 천막을 걷고 이동했습니다. 강의 장소가 바뀌어도 시간표는 유지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1953년, 그해에도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1975년. 삽을 들고 관악산으로 향한 사람들
전쟁이 끝나고 20여 년이 지났습니다.
정부는 서울 곳곳에 흩어진 캠퍼스를 하나로 통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장소는 관악산 자락, 당시엔 허허벌판이었던 땅이었습니다.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산을 깎고, 길을 내고, 건물을 올렸습니다. 학생들이 이사 짐을 들고 산을 올랐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캠퍼스가 지금 여러분이 방문하는 관악 캠퍼스입니다.
올해 2026년은 그 관악 캠퍼스 종합화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80년 후, 같은 자리에서
2026년 지금, 그 캠퍼스에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서관이 있습니다. 좌석 수 2,400석. 냉난방이 완비된 열람실. 원하는 논문을 클릭 한 번으로 찾을 수 있는 시스템. 1950년 천막 교실에서 등사 교재를 받아들던 학생들이 상상도 못 했을 환경입니다.
그리고 그 도서관 안에는, 오늘도 누군가 앉아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개교 80주년 온라인 전시관
80년의 기록이 사진과 영상으로 아카이빙되어 있습니다. 1946년 개교 당시의 사진, 전쟁 중 피난지 강의 장면, 관악 캠퍼스 조성 과정의 기록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